오마이뉴스 | 수 십 번 낙방 끝에 KBS PD 됐지만... 결국 퇴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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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 취직하기 전까지 20대에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에 직업소개소에 나가서 신분증을 내고 기다리다 보면 "박인석 씨"하고 이름이 불린다. 그리고 어디론가 실려 가는 차 안에서 졸다 보면 철근공장, 김치공장 등 다양한 곳에 내려져서 그날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받는 일당은 5만 원. 그 중 5000원은 직업소개소가 수수료로 떼어간다. 대학 시절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새벽에 신문·우유배달을 했고, 방학이나 개학을 맞아서 학생들이 기숙사 짐을 빼야 하는 날엔 택배 상하차를 했다.
2000년대에 20대를 살았던 우리 또래를 지칭하던 당시의 세대론에 '88만 원 세대'가 있었다. 세대 간 불균형과 비정규직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우리 또래 대다수는 월평균 임금 88만 원을 받고 사는 노동자가 될 거라는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의 분석이었다. 안타깝게도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후반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그의 주장은 완벽하게 틀린 분석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에겐 88만 원이 아니라 8만 8000원, 아니 8800원도 귀했기 때문이다. 당시 월평균 88만 원이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사람은 내 기준엔 부자였다.
조금 고급스러운(?) 알바도 있었다. PD지망생인 내게 지역 MBC에 아나운서로 근무하던 학과 후배가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코너대본을 써줄 수 있겠느냐고 한 거다. 일주일에 두 코너씩 썼고, 일주일에 8만원을 받았다. 기업행사에 필요한 영상제작 의뢰를 받았을 때는 홍대 근처 방송장비 렌탈업체에서 Z1 캠코더를 2만 원에 빌려서 영상을 찍고, 시간당 5000원이었던 충무로 유료 편집실에서 편집해 납품했다. 한 건당 받은 금액은 15만 원. 물론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했던 아르바이트인 과외는 닥치는 대로 했다.
구구절절 20대 청춘시절의 이야기를 늘어 놓은 건, 서른이 되기 직전의 가을 어느 날 KBS 예능PD로 최종합격한 게 그만큼 소중한 소식이라는 걸 설명하고 싶어서다. 언론고시생이란 이름으로 PD준비를 한 시간이 일수로 1008일. 언론사 방송사만 총 65번의 지원을 했고 서류와 필기, 실무평가와 최종면접 등의 과정에서 수많은 낙방을 했다. 이제 곧 서른이니 피디고 나발이고 슬슬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할까 싶던 2010년의 가을. KBS는 1200여명의 예능드라마PD 지원자 중에서 3명을 뽑았고, 그 안에 믿을 수 없게도 내 수험번호가 있었다. 그렇게 KBS는 내 인생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일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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