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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5-06-12 09:55 /  HIT: 4회

오마이뉴스 | "나는 북한의 페미니스트였다"는 작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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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기반 에세이, 탈북 작가 설송아의 <여자는 죽지 않았다>(2025년 5월 출간)를 며칠 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 <마담 B>가 떠올랐다. 두 콘텐츠 모두 북한, 즉 북조선 여성이 서사의 주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이들이 살기 위해 취한 행적이 다르면서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북한은 줄곧 경제적 위기 속에 있었다. 1994년 마침내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처참한 현실에 내던져진다. 배급제 붕괴는 상상 그 이상이다. 명목적으로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는 체제의 배급 중단은 나라가 사람을 버렸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무배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제재 뚫고 장마당 '혁명'을 만들어낸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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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굶어죽을 기아의 위기를 타개한 것은 당시 여성들이었다. 북한 연구자인 김성경의 책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서 나왔던, 한 여성 인터뷰이가 "머리 트인 여자들이 없었다면 북조선 사람들은 다 죽었을 거"라는 증언은 과장이 아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여자들은 장마당을 만들어냈고, 이곳에서의 상거래를 통해 북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책 <여자는 죽지 않았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설송아도 적극적으로 어릴 때부터 장마당에 뛰어들어 가족을 먹여 살렸다. 식량은 물론 어떤 물자도 없는 사회에서, 거의 모든 물품이 마술처럼 만들어져 장마당에서 거래되었다.

민간에서 항생제가 부족하던 때, 그녀는 페니실린을 수급해 파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페니실린을 직접 만들어 공급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결국 체제 위기는 그녀를 1세대 '돈주'(신흥 자본가)로 만들어 주었다. 일당 공산국가 북조선에서 돈주라니, 그녀가 장마당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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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 상인에서 점차 사업가로 변신한 저자도 그러나 한때 '입당'이 인생 목표인 어린 시절이 있었다(북한에서 '조선로동당' 입당은,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해 고되고 힘들지만 명예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신 성분이 가장 큰 핵심가치인 북에서, 그녀의 부모가 물려준 좋지 않은 성분 '복잡 계층'이라는 사실상 낮은 신분은 성공욕이 강한 그녀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었다. 반드시 입당해 사람답게 살 권리를 획득하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비날론(북한식 섬유) 공장의 고된 노동과 밤까지 이어지는 청년 활동도 마다 않게 만들었다.

고된 노력의 결과 특별 배급받은 평양 사탕 1킬로가 페니실린 10대 가치로 교환되는 시장성을 깨우친 장사의 맛은 그녀를 각성시켰다. 엄마가 돌아가시며 "식량 배급 날만 기다리다가 인생이 흘렀구나"라는 한탄 섞인 유언을 딸인 자기 세대까지 대물림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에 그녀는 입당을 버리고 장마당에 투신한다.

이후 그녀가 장마당을 통해 보인 장사 수단은 놀라웠다. 또한 그녀가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장마당의 풍경은 북조선 사람들이 이미 자본주의를 내재화하고 있었으며, 이 변화의 선두주자가 여성임을 보여준다. 무능한 당을 따돌리며 여자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했다.

어느새 저자는 더는 결혼을 미룰 수 없는 나이에 이른다. 북조선에서 결혼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다. '비혼'은 있지도 않은 개념이고, 나이가 차 결혼하지 않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불명예다. 한국 사회도 이런 시대를 답답하게 지나왔다.

다행인지 장마당 여성이 신붓감 1순위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아도 괜찮은 남편감을 고를 수 있었다. 무능한 당이 부여하는 좋은 출신 성분은 이제 좋은 결혼 조건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장마당 사업자인 배우자가 남편 성공의 일등 보증인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신혼집 마련도 혼수 준비도 장마당 사업자인 저자의 몫이었다. 축적한 돈으로 몇 년 치 노동자 월급에 준하는 집을 사고 TV를 장만했다. 남편은 당원이고 교사였지만, 그 돈벌이로는 북조선에서 더는 행세하며 살 수 없는 처지였다. 저자는 장마당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남편을 번듯하게 내조했고 아들도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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