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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5-05-25 11:42 /  HIT: 1회

오마이뉴스 | 이기적인 '말벌 동지'가 목격한 영화보다 영화같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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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부적절하고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금 이기적인 마음으로 '말벌 동지(탄핵 집회 이후 여러 투쟁현장으로 가 연대하는 이들)'가 되었다. 거기서 일어나는 영화 같은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광장과 농성장에는 한국 (상업)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더 영화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12.3 내란은 어쩌면 한국 (상업)영화가 천착해온 권력, 부패, 암투를 다루는 암청색의 비릿한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나에게 지난 4개월, 그리고 파면 이후인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윤석열도 정치인들도 아닌 낮에는 광장을, 밤에는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색감은 암청색이 아닌 무지갯빛이다.

장면 하나. 그날은 내란수괴가 석방된 다음 다음 날로, 평일에도 집회를 매일 같이 이어가기로 결정한 첫 월요일이었다. 광화문 앞에는 퇴근 후 석방된 윤석열을 규탄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고, 세종호텔 앞에는 그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브라스 밴드', 캄캄밴드의 연대 공연을 보기 위해 모였다. 우리는 세종호텔 앞에 목욕탕 의자를 깔고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앉았다. 우리와 그 하늘 사이의 도로 위에는 고진수 동지가 있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내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자유 발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동묘에서 노점상을 하며 틈틈이 시를 쓴다며, 지난 3.8 여성의 날에 느낀 바를 낭독했다. 여성 해방 없이는 노동 해방 없다! 그는 해질녘의 노란 하늘을 배경으로 여성의 날에 쓴 시를 낭독했다. 캄캄밴드의 연주가 시작되고, 내 옆의 앉은 시인 할아버지는 곡 하나를 마칠 때마다 나에게 곡명을 물어봤다.

"이번 노래는 뭐예요?"
"<핑크팬더> OST예요."

"핑..크..펜..더..오..에..스..티.. 이번 노래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에요."
"문… 달의 문인가."

그는 모든 것을 신문지 귀퉁이에 볼펜으로 적어뒀다. 집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적는다고 했다. 그리고 '요괴노조 동아시아지부(내가 집회에서 입는 조끼에 적혀있다)'가 실제로 있는 거냐며, 그것도 신문에 적어 갔다.

해가 지고 깜깜해져서 이제는 고진수 동지가 머리에 쓴 헤드랜턴의 불빛으로 그가 거기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 어떠셨어요?" 우리의 대화는 차도를 사이에 두고 이루어지고 달리는 차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여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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