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최고의 셀프 복지"...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다
관련링크
본문

아내가 집을 나갔다. 우리 부부가 지금 사는 곳은 서울, 아내는 인천에 원룸을 새로 구했다. 나는 원래 사는 집에 그대로, 아내는 인천 어딘가 작은 원룸에 각각 살게 되었다. 말 그대로 '별거'를 하게 된 셈이다.
지난 2월 말까지 아내는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복지사로 근무했다. 4년 정도 비정규직 파트타임으로 일하다가 작년 5월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아동센터도 정식 TO가 늘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아내의 정규직 전환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아내의 노력에 행운이 더해진 결과였다. 아내의 정규직 전환은 나도 무척이나 바랐던 일이었기에 너무 기뻤다. 우리 부부는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에게는 인생 첫 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센터에서 일하기 전까지 아내는 줄곧 학생들을 상대로 국어를 가르쳐 왔다.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학원 강사, 과외 등등.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해왔지만, 그중 정식으로 소속을 두고 일한 적은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정규직이 되었건만, 아내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히 매일 풀타임 근무에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센터라는 특성상 아이들을 위한 외부 행사가 특히 많았는데 그걸 무척이나 더 힘에 부쳐했다. 등록된 아이들의 숫자에 대비해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결정타는 상사와의 갈등이었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직장에서 대인관계가 원만하면 버틸만하다. 일이 힘들어서 관두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수백 번 반복해 말해도 반박의 여지없는 명언이다.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남편이라서가 아니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직장을 관뒀다. 직장 내 관계의 힘듦이 가장 큰 원인이 되어 재작년 말 퇴사를 했고 아직까지 백수다.
누군가는 '다들 힘들다', '그럼에도 참고 일하는 거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존중하는 바이지만, 세상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퇴사한 지 2년 차, 내가 여전히 백수인 이유는 참다 참다 얻은 우울증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말부터 아내는 부쩍 더 많이 힘겨워했다. 마치 퇴사 직전 나를 보는 듯해서 너무 힘들면 관두라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백수가 된다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그래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살고 보자는 심상이었다. 우울증 부부가 되어 병원 신세 지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전체 내용보기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