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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5-02-19 15:03 /  HIT: 11회

오마이뉴스 | 더 이상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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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 시 전후로 눈이 떠진다. 딸은 실습 중인 병원으로 출근할 준비를 하고 아내는 그런 딸을 살피면서 나와 아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들과 밥을 먹는 사이 아내는 내 도시락을 만든다. 두 개의 보온병에 따뜻한 물과 뜨거운 커피를 담고 과일까지 따로 챙기면 내 하루치 먹을거리다. 아들은 취업 공부하러 졸업한 학교로 가고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택시를 점검하고 일을 시작한다.

올해 특성화고 3학년이 되는 딸은 작년부터 학교가 아닌 병원으로 월급 없는 실습을 나가고 있다. 등교가 아닌 출근을 하는 고등학생이지만 곧 대학 진학과 함께 다시 등교를 꿈꾸고 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첫 기술직 공무원 2차 시험에서 낙방하고 앞길이 난망한 취업준비생의 삶을 시작했다.

지난해 느닷없이 다니던 병원이 폐업하면서 직장을 잃은 아내는 이참에 아예 전업주부로 살기로 했다. 본인은 재취업 의지가 있긴 하지만 쉰 보다 예순이 가까운 나이와 누가 보아도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작고 약해 보이는 몸집은 그게 썩 여의치 않다는 걸 한 눈으로 보여준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지난 2월 이후 58세가 지났다. 작년부터 외벌이가 되었고 자식들은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딸은 주말에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생으로는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아내가 주는 용돈은 그것대로 받아 쥔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는 노령수당과 주택연금을 합해 월 1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어 자식들에게 받던 생활비를 몇 년 전 중단시켰다. 몸도 건강하고 활달하게 생활하고 계신지라 병원비도 들지 않는다. 자식들에게는 돈을 떠나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어머니가 고맙다.

덕분에 나는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서 자유롭지만 가성비가 확 떨어진 서울에서의 주거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는 일은 여전히 부담이고 아마도 끝까지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예상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꾸준하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 아니라 불과 8년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지방과 섬을 전전하며 자유롭게 살다 어떤 피치 못할 일로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방이라면 집 한 채 사기에 충분할 돈이 서울에서는 전세방도 어렵게 구할 초라한 규모로 작아져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거지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런 데다 적어도 몇 년은 실직한 아내와 곧 대학생이 될 딸과 언제 취업할지 모르는 아들까지 가족들에게 필요한 모든 돈을 혼자 다 벌어야 하는 터널에 진입했다.

남편이자 아빠인 나는 전혀 주저함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성큼성큼 내 발로 터널에 들어오긴 했으나 빛이 보이는 끝은 몇 년 뒤에야 보인다는 사실이 가끔은 기가 막힌다.

노동시간에 대한 정직성

이건 아내나 아이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를 향한 욕망으로 인해 생긴, 가난한 자를 잡아먹으면서 제 몸집을 불리는 좀비 같은 세상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아이들이 독립하면 지방으로 내려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한 삶을 살자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견뎌야 할 시간이 아직 몇 년이나 더 남았다. 그래도 그걸 버틸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을 걸었던 확실한 실체가 내게 이미 있었다. 개인택시였다.

몇 년 전부터 그러기로 마음먹고 준비했고 시작한 터였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노동시간에 대한 정직성 때문이었다. 오래 일하면 수입이 많고 짧게 일하면 수입이 적은 당연한 논리가 그나마 통하는 직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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