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이런 명절이라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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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명절 전날 큰집에 가는 발걸음은 들뜨고 설렜다. 가족들과 설빔을 차려입고 손에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큰집에 갔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미소와 정겨움이 넘쳐났다. 슈퍼마켓과 과일가게에는 선물세트가 가득 쌓여 있었고 눈 쌓인 골목마다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한집 두집 친척들이 모이면 어른들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끼리 모여 어른들은 수다를 떨며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설날 아침에는 떡국을 든든하게 먹고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받은 세뱃돈을 들고 신이 나서 문방구로 달려가 장난감을 사고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 맞는 명절은 모습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난 14일, 정부에서 2025년 1월 2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친구들의 단체 카톡방이 뜨거워졌다. 특히 이번 연휴에 가족들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친구는 부러움을 샀다.
그 외에는 명절이 길어지면 고향에 일찍 내려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친구, 요즘 가게 운영이 어려운데 연휴가 늘어나 손님이 없을까 봐 걱정이라는 자영업 하는 친구, 사춘기 자녀들과 연휴를 보내며 신경전할 생각을 하면 머리가 벌써 아프다는 친구, 삼시세끼 6일 동안 몇 끼를 준비해야 하냐며 푸념하는 전업주부 친구, 대학 진학도 취직도 안 된 자녀가 있어서 친척 만나기 부담스럽다는 친구, 명절 휴일이 길어서 귀향길이 덜 막혀서 좋다는 친구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늘어놓았다.
한 친구가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하자 저마다 맞장구를 쳤다. 명절을 없애자고 국민 청원에 올리면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거라고 다른 친구가 말을 보탰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불문율이 있다. 지금까지 명절이 존속한 이유는 전통적 의미만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명절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유교적 전통에 의한 제사 문화, 무조건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하는 가문중심 문화, 여자들에게 명절 노동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명절 음식 문화 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명절에 대해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친구들에게 단톡방에 명절이 왜 부담스러운지 이유를 물었다. 명절이 부담스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소원해진 인간 관계라고 했다. 제사 문화가 줄어들고 핵가족화와 1인 가구가 확산되면서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가 급속하게 줄었다고 한다. 또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친척 간의 친밀감이 더욱 약화되었다. 1년에 한두 번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것이 당연해졌다.
명절날에 친척들이 모이면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휴대폰을 하고 어른들은 대화 없이 TV 앞에 둘러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친척 간에도 이미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대학 진학 여부, 취업 여부, 결혼 여부, 출산 여부, 연애와 직장 생활 등 불편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은 피해야 한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거나 시국에 대한 의견을 잘못 꺼내면 집안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명절에는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긴장된 상황이 펼쳐진다.
명절이 힘든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었다. 부모님 용돈은 물론 선물 준비는 기본이다. 또한 설날에는 친척들의 선물과 세뱃돈이 추가된다. 명절 음식을 위한 준비 비용과 귀향을 위한 교통비까지 합치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도 명절이니 형편이 어려운 내색을 하기 어렵고 울며 겨자 먹기로 최소한의 도리와 체면치레를 위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했다. 어느 집은 명절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호텔에 가서 호캉스를 즐긴다고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고 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 늘어나고 가족이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남의 집 이야기를 들으면 명절 음식을 힘들게 준비하고 있는 본인의 처지와 비교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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