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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5-01-01 19:41 /  HIT: 8회

오마이뉴스 | 살인죄로 도망자 신세가 된 천재작가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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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거장 카라바조와 바로크의 얼굴들'이 서울에 상륙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카라바조의 작품 10점과 바로크 화가 작품 57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유화로 그려진 완성작이라 규모가 작지 않다.

다른 바로크 화가들의 좋은 작품도 많았지만, 이 장에선 카라바조 작품과 삶 위주로만 살펴보려 한다. 먼저 그의 초기 대표작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악마적 재능'을 가진 카라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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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꽃을 꽂은 미소년이 가운뎃손가락을 도마뱀에게 물리고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린 채 관객을 바라본다. 통증으로 눈가엔 눈물이 맺혔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분홍 장미가 꽂힌 투명한 꽃병, 꽃병에 비친 실내 풍경, 테이블 위의 체리, 손가락을 깨물고 있는 도마뱀의 꼬리까지 얼마나 세밀한지 그림이 아니라 스냅사진 같다.

오른쪽에서 들어온 빛은 소년의 어깨 위로 떨어져 그의 동작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소년의 표정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꽃병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편 문이 열린 곳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운뎃손가락은 남자의 성기를 의미하고 도마뱀은 유혹, 고통을 상징한다. 고로 유혹에 넘어가면 성병에 걸릴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동성 연인이라는 견해도 있음) 자화상이든 초상화든 저런 독특한 자세를 그렸다는 것, 정물화와 자화상을 한 작품에 담고 있는 점은 매우 새롭다. 그가 이렇게 그린 이유는 간단하다. "난 인물화도 정물화도 이 정도 그려! 그러니 나에게 그림을 맡겨!" 사실적이고 디테일이 엄청난 이 작품은 카라바조가 그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그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뜻밖에도 법원이다. 그는 무려 15번 고소·고발 사건에 연루되어 7번 투옥된 전과자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그림 찬스'를 썼고, 그의 작품에 매료된 성직자와 귀족들은 그를 꺼내주는 대가로 작품을 받았다. 다혈질에 분노조절장애가 의심되는 그는 테니스(유사한 스포츠) 경기 중에 라누치오 토마소니와 시비가 붙자, 그를 죽여버린다. 토마소니도 만만치 않은 집안이라 결국 사형선고를 받는데, 그는 사형을 면하고자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이름 앞에 '악마적 재능을 가진'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카라바조(1571~1610)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그의 화풍을 추종하는 작가군을 지칭하는 용어<카라바제스키(Caravaggisti)>가 따로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화가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우리가 익히 아는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아서 카라바조란 이름을 사용했다.

종교화 그려 로마의 스타로 급부상

5살에 흑사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카라바조는 13살에 티치아노의 제자인 시모네 페테르차노에게 4년간 도제 교육을 받는데, 이때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남아있지 않다. 다만 당시 그가 속해있던 롬바르디아 지역 화풍과 훗날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의 연관성에서 유추해 보면 일상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 기법과 빛과 어둠을 대비하는 기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까지 사망하자 20살 무렵 로마에 입성한 카라바조는 뒷골목을 떠돌며 처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푼돈을 받고 그림을 그렸고, 주세페 체사리 공방에 들어가 기계적으로 꽃과 과일을 그렸다. 이에 신물이 난 카라바조는 공방을 나와 로마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제로 한 '점쟁이', '카드 사기꾼' 같은 걸작을 내놓았다.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으로 델 몬테는 1595년 카라바조를 자신의 궁전으로 데리고 와 함께 지낸다. 당시 로마는 종교개혁 이후 개혁기를 맞았고, 가톨릭과 예수회 교회들은 신자를 모으기 위해 대대적인 종교화 제작에 들어갔다.

카라바조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재단화를 의뢰받아 세 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성 마태오의 소명, 성 마태오의 영감, 성 마태오의 순교) 이로 그는 단박에 로마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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