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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4-12-26 12:01 /  HIT: 1회

오마이뉴스 | 이브날 밤 도착한 선물... 내가 본 이 시대의 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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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밤 11시 44분, 책을 읽다 잠이 쏟아져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뭐지? 확인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간에 올 연락이 없는 것 같아 염려되는 마음에 휴대폰 알림을 확인했다. 쿠팡이다.

이 시간에 쿠팡이라니? 최근에 주문한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친언니였다. 크리스마스라고 아이들에게 간식 선물을 보낸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켜 문밖으로 나가 택배 상자를 안으로 들였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이 늦은 밤에 택배라니. 내가 사는 제주에서도 얼마 전 야간 로켓배송이 시작됐다더니 예상치 못한 시간에 받아 든 택배에 기분이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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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가 따로 없구나. 아니, 이 시대에 배달 노동자는 산타였구나. 크리스마스이브 따뜻한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도 모자랄 시간에, 각 가정에서 주문한 물건들을 제시간에 배송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고 있다니.

생각해보면 올해 쿠팡에서만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몇이던가. 동료들이 현장에서 죽어나가고, 회사에서는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달려야 한다(관련 기사: 제주도라 끊지 못하는 쿠팡, 근데 너무 괴롭다 https://omn.kr/299t7 ).

2024년 연말, 21세기의 한복판에 노동자의 권리나 법정노동 시간의 준수가 가볍게 무시되고 있다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안락하게 집안에서 보내고 있을 순간에, 누군가는 이 추운 날 발에 땀이 나도록 쉼 없이 뛰며 택배를 분류하고 각 가정에 나른다. 내가 무탈하게 지낸 하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채워져 있다.

아이 학교에서는 야간 도서관을 운영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다섯 시부터 여덟 시 반까지, 자원봉사하는 보호자들이 도서관을 지킨다. 이들은 아주 적은 임금만 받으며 일 년 내내 정해진 요일에 도서관을 지켜왔다. 주 방문객이 초등학교 학생들이니, 자신의 아이만 챙기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챙기는 돌봄 노동을 하겠다고 나선 것과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이브는 공휴일이 아니니, 담당을 맡은 보호자는 아마 저녁 내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딸아이 하나를 혼자 키우고 있는 보호자는 딸과 함께 도서관에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을 지났으리라. 저녁 내내 편히 집안에 머물면서도 못내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차마 건네지 못한 게 생각나 떡이라도 급히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왔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빚을 진다.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들

인근 카페 사장 역시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데,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제주로 오는 방문객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문을 연다. 책방이나 소품점을 운영하는 분도, 숙소나 음식점을 하는 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들이 쉴 때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연휴는 가족과 함께 하기에 너무나 힘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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