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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5-06-22 11:14 /  HIT: 1회

오마이뉴스 | "집에 있으면 죽을 팔자" 부모에게 거짓말한 스님이 평생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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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법어를 떠올리게 하는 수행자이지만, 그가 반세기 넘는 수행과 포교를 통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따로 있다. 그는 삼라만상은 다 평등하며 중생구제가 최고 덕목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조계종 최고 어른인 종정 직에 있었다. 이 시기는 군부독재가 제2라운드를 지나 제3라운드를 마칠 때였다. 전두환 집권기(1980~1988) 및 노태우 집권기(1988~1993)와 일치한다.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이 전개된 이 시기에도 반독재 투쟁만으로는 세상이 온전한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민주화투쟁으로 치유되기 힘든 영역에서 세상에 위안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집권기의 부조리는 민주화세력 및 노동자·농민은 물론이고 불교·천주교·기독교 등의 성직자들까지 총출동해서 치유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성철은 그런 거악에 맞서 세상을 살리는 일의 일익을 담당했다.

만민평등, 중생구제... '사람은 누구나 다 부처다'

1912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해 이영주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그는 20대 초반에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하다가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제자인 원택스님이 그의 행적과 사상을 정리하고자 <백련불교논집> 제4집에 기고한 '성철스님의 행장과 말씀'은 출가 시점과 관련해 1936년설과 1937년설이 있지만 후자가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글에 따르면, 성철은 "출가하실 때 집안에서는 반대하지 않으셨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일이 있다. 이때 성철은 20대 중반의 자신이 불교 교리와 거리가 먼 사주팔자를 활용해 부모를 속인 일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부모에게 "집에 오래 있으면 죽을 팔자"라며 "절에서 한 십 년 공부를 하고 오면 괜찮고, 집에 오래 있으면 일찍 죽을 팔자"라고 자기 사주팔자를 스스로 풀이했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집에서 성장한 성철은 이것저것 많은 책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아들의 '셀프 사주풀이'를 듣고 긴가민가 했다. 결국,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점쟁이를 찾아간다.

점쟁이는 "그것은 거짓말이오"라며 "당신의 아들은 사주가 좋고 집을 나갈 사람이 아니오"라고 단언했다. 이를 전해들은 성철은 "그 사주쟁이 말이 틀리니까, 어머님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라며 십 년 뒤의 귀가를 약속하고 출가했다.

십 년 뒤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공부는 그 안에 끝날 수 없었다. 해인사를 거쳐 범어사·송광사·법주사·통도사·도선사를 포함한 전국의 사찰과 암자를 돌며 그는 수행정진했다. 어머니에게 약속한 10년이 두 번이나 지나고 7년이 더 흐른 1964년에는 52세 나이로 '항상 산간벽지의 암자에서 수행하며 도시로 나가지 않겠다', '일체의 공직과 집회에 나서지 않겠다' 등의 서약을 하고 수행정진의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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