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참고 견딤이 필요할 때 생각하라, 모탕의 인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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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바라본 장작더미 사이로, 오래전 산사에서 마주쳤던 수행자의 깊은 눈빛이 떠올랐다. 모진 풍파를 견뎌낸 늙은 나무의 옹이처럼, 삶의 고통과 인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잊힐 수도 있었을 그 순간이 이토록 오랜 시간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때, 나는 고통을 묵묵히 견디는 '침지인(椹之忍)'과 같은 삶의 한 단면을 무의식중에 목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늦가을, 나는 절집 경내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불교방송 '명상의 시간' 원고를 집필하던 때라서 마음의 풍경을 담을 소재를 찾고자 자주 들르던 산사였다. 그날도 발밤발밤 걷던 중, 장작을 패는 스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탄탄한 체구,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 그리고 속세의 잘생김이 묻어나는 얼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스님은 아름드리 통나무 받침목 위에 나무토막을 세우고, 도끼를 높이 들었다가 나직한 기합과 함께 내리쳤다. 날 선 도끼가 나무를 가르자, "쩍" 하는 울림이 산사 마당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쪼개진 장작은 양옆으로 힘차게 튀어 나갔고, 단단한 나무가 힘없이 갈라지는 모습은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의 동작에는 망설임도, 실수도 없었다. 능숙하다기보다 마치 번뇌를 끊어내듯, 도끼질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쏟는 듯했다. 군 복무 시절, 친구 집에서 장작을 패다 발등을 다친 적이 있다. 옹이를 치고 도끼를 놓치는 순간, 전투화 앞코가 찢겨 나가며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장작 패기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한 터라, 스님의 거침없는 도끼질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무언가로 다가왔다. 그의 능숙한 동작 하나하나가, 오히려 깊은 울림과 경외심을 남겼다. 한참 동안 장작을 패던 스님은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나는 합장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스님, 장작 패시는 솜씨가 정말 놀랍습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의 얼굴은 깊은 침묵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어떤 끌림에 나는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깊은 산중에서 겨울을 나려면 장작이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내가 말을 붙여 보았지만, 스님은 일언반구 대꾸하지 않았다. 인사 한마디, 미소 한 조각 없이 그저 조용히 움직였다. 말을 받아주지 않아 살짝 민망한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통나무 받침목에 눈길이 갔다. 수많은 도끼질에 찢기고 파인 모양이 무차별 난도질당한 상처처럼 아파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스님의 도끼 아래 놓여 있던 그 낡은 받침목이 '모탕'이라 불린다는 것을. 그저 평범한 나무토막처럼 보였지만, 그 나무가 어떤 묵묵한 인내로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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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늦가을, 나는 절집 경내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불교방송 '명상의 시간' 원고를 집필하던 때라서 마음의 풍경을 담을 소재를 찾고자 자주 들르던 산사였다. 그날도 발밤발밤 걷던 중, 장작을 패는 스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탄탄한 체구,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 그리고 속세의 잘생김이 묻어나는 얼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스님은 아름드리 통나무 받침목 위에 나무토막을 세우고, 도끼를 높이 들었다가 나직한 기합과 함께 내리쳤다. 날 선 도끼가 나무를 가르자, "쩍" 하는 울림이 산사 마당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쪼개진 장작은 양옆으로 힘차게 튀어 나갔고, 단단한 나무가 힘없이 갈라지는 모습은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의 동작에는 망설임도, 실수도 없었다. 능숙하다기보다 마치 번뇌를 끊어내듯, 도끼질 하나하나에 온 정신을 쏟는 듯했다. 군 복무 시절, 친구 집에서 장작을 패다 발등을 다친 적이 있다. 옹이를 치고 도끼를 놓치는 순간, 전투화 앞코가 찢겨 나가며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장작 패기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한 터라, 스님의 거침없는 도끼질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무언가로 다가왔다. 그의 능숙한 동작 하나하나가, 오히려 깊은 울림과 경외심을 남겼다. 한참 동안 장작을 패던 스님은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나는 합장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스님, 장작 패시는 솜씨가 정말 놀랍습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의 얼굴은 깊은 침묵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어떤 끌림에 나는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깊은 산중에서 겨울을 나려면 장작이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내가 말을 붙여 보았지만, 스님은 일언반구 대꾸하지 않았다. 인사 한마디, 미소 한 조각 없이 그저 조용히 움직였다. 말을 받아주지 않아 살짝 민망한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통나무 받침목에 눈길이 갔다. 수많은 도끼질에 찢기고 파인 모양이 무차별 난도질당한 상처처럼 아파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스님의 도끼 아래 놓여 있던 그 낡은 받침목이 '모탕'이라 불린다는 것을. 그저 평범한 나무토막처럼 보였지만, 그 나무가 어떤 묵묵한 인내로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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