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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4-10-02 17:40 /  HIT: 19회

오마이뉴스 | 택배 노동자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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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쯤 <오마이뉴스>에서 갑자기 목사와 운동가로 살아온 사람으로 내가 택배 일을 하게 된 이야기를 연재로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독교 언론도 아니고, 한 번도 아니라 매주 연재로 이런 글을 써달라는데 의아했지만, 오히려 써가면서 내가 이 글을 써야 할 이유를 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사람이 살면서 뜻밖의 위기를 만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것이었다. '누군가의 일'은 늘 '누구나의 일'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부터가 그랬다. 30년 동안 목사로, 사회운동가로 살면서 보람과 이름도 얻으며 나름 잘 살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 50이 접어들 때 돌연 결코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늪에 빠졌다. 살아온 인생도 허망하고, 살 의욕도, 앞으로 살아갈 목표로 완전히 잃어버렸다. 말이 목사지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켜켜이 쌓여갔다.

그때 친구이던 택배 점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럴 때일수록 멍하니 앉아 복잡한 생각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땀 흘리며 몸만 쓰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차려진다." 큰 부담은 됐지만, 하늘의 전보처럼 들려 며칠 후 바로 출근했다.

다시 잘 살려고 시작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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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그때 내가 택배로 나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나는 더 깊은 나락에 떨어져 어쩌면 인생을 완전히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모든 택배 동료들도 그랬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일을 처음부터 기쁘게 선택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편안한 인생을 꿈꾸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뜻밖의 위기를 만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때 그저 살려는 욕구만으로 선택하는 일 중 하나가 택배다. 그래서 신종 인생막장이다.

그런데 인생의 밑바닥에서는 '내가 왕년에 누구였는데' 하는 거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빨리 걷어낼수록 좋다. 내가 노숙인 쉼터 시설장 시절(2017~19년), 입소인 중에는 '왕년에' 학원장, 큰 식당 사장, 총학생회장, 명문대 출신, 육사 교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한가락 했던 분도 많았다. 대부분 이제 '왕년에'를 잊고, 현재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살았지만, 그들 중에는 노숙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외톨이로 사는 분도 있었다.

나 역시 택배 초년병 시절, 퇴근 후 고객과 불편하게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듣던 딸이 내가 전화를 끊자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고객과 전화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목사인데'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빠가 목사일 때도 좋았지만 지금 택배기사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 부양하는 모습도 굉장히 멋진데."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러나 바닥을 살수록 삶의 의미와 목표를 다시 찾는 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때 가족은 우선적일 것이다. 우리 동료들도 대개 그렇다. 매일 400여 개를 배송하며 우리 터미널에서도 늘 배송순위 5위 안에 드는 50대 동료는 늘 끙끙대면서도 배운 게 없어 고생한 자신과 다르게 외아들만은 잘 길러보겠다고 1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힘들 때는, 그저 지금을 잘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나도 그랬다. 그때 나는 몸도, 마음도 죽을 만큼 힘들었다.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 가리봉동에 배치되었을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손(내겐 하나님)이 일부러 더 깊은 벼랑으로 끌고 가는 듯했다. 그때 나는 매일 그날만 버텨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니 일도 수월해지고 어느새 마음에 넉넉한 여유와 서서히 차오르는 힘을 느꼈다. 그래서 인생이 막막하고, 힘든 분을 만나면, 나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힘든 육체노동을 해보도록 진심으로 권한다. 벼랑 끝 외길에서 만나 뜻밖의 고난은 인생이 주는 뜻하지 않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

"혹시 지금 인생 막장을 경험하고 있는가? … 내 경험을 들어 말한다면, 인생의 위기가 닥치고 의욕이 떨어지고 길이 안 보일 때 육체노동을 권한다."(215쪽)

둘째는 아무래도 내가 목사라는 것과의 관련성이다. 신문사에서 내게 요청한 것도 택배 일의 소개를 넘어 목사로서 택배를 하며 느끼는 조금 다른 시선을 소개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연재 제목도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로 정해주었고, 이번에 나온 책 제목도 <목사님의 택배일기>(산지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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