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스물여덟에 빛을 잃었지만, 언제나 씩씩했던 당신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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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딸의 부고장을 돌릴 수 없었다. 가족과 아주 가까운 지인들, 9년 전 딸에게 비극이 닥쳤을 때 함께했던 이들에게만 알렸다. 참 황망한 일이었다. 거제도로 여행 가기로 한 날 아침, 딸이 일어나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딸 진희씨는 기적 같은 삶을 살았다. 9년 전인 2016년 2월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 사고로 쓰러졌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깨어났다. 진희씨는 어떠한 빛도 감지할 수 없는 시각장애 1급, 뇌를 다쳐 팔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뇌경색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을 통과하면서도 그녀는 씩씩했다. 마산 앞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언젠가 다시 앞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지난주 토요일(12일) 여행날 아침, 진희씨는 늦잠을 잤다. 아버지는 딸을 깨웠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집중치료실에서 며칠을 버틴 끝에 지난 17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없었다.

피해자로만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 2015년과 2016년 20~30대 청년 7명이 삼성전자·LG전자 하청업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시력을 잃었다. 파견노동자로서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가 메탄올 중독 사고로 쓰러진 것이다. 피해자들을 공장에 불법으로 파견을 보내고, 이들을 안전장비 없이 값싼 독성물질이 자욱한 공장에서 일하게 했던 업주들은 단 한 명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산업재해가 모두 인정됐지만, 업주들은 모두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슬픔에만 빠지지 않았다. 불법파견, 산업재해, 하청구조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유엔제네바본부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직접 발언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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