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대통령이 없어진 지금, 가장 필요한 것
관련링크
본문

최근 친구를 만났다가 들은 이야기이다. 가속노화의 반대말, '저속노화'가 일종의 밈이자 새로운 가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시대이기에 다들 조금 웃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계엄과 탄핵의 기간을 거치며 정치 뉴스를 보다 신경질적으로 인터넷 창을 꺼버린 일이 많아졌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아야겠다는 생각과 정신건강을 위해 뉴스를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매번 충돌했다.
계엄령과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이후 많은 시민이 성장했다. 탄핵 시위에 나가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도 "서로에게서 배웠다"라는 증언이었다. 광장에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야기로 모두 뭉뚱그릴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시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방식의 성숙한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여성과 농민과 노동자와 성소수자 등,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배움이 정치권에 반영되었는지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여전히 광장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들이 정치권에 닿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더 크다. 오히려, 꼭 나와야 할 이야기가 탄핵 정국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차별과 모욕,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생태 위기는 어느새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로 급격히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지금까지 어떤 것이 문제였는지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응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말하는 정치인도 늘어났다.
탄핵해야 하는 것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뿐만 아니라 일상의 문제라는 사실을 배운 광장에서 물러날 때, 변하지 않는 일상과 정치가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그때마다 왜 시민의 성장이 정치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쉽게 이해가지 않았다.
전체 내용보기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