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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고관리자 /  DATE: 20-09-11 12:09 /  HIT: 21회

오마이뉴스 | '분노조절장애'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비결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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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부터 또 미사가 중단됐다. 그렇다. '또'다. 올해에만 두 번째다.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될 사태가 연이어 현실이 되고 있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독하고 집요하다. 무서운 놈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천주교회에서의 감염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거듭한 교구의 현명한 대처 덕이리라. 새삼 감사드린다.

문 닫힌 성당을 바라보는 초보신자의 마음은 착잡하다. 세례 받은 지 고작 2개월, 홀로 하는 신앙생활은 아직 익숙지 않다. 의무를 '자주 소홀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까맣게 잊기' 일쑤다. 성모대축일미사에 결석하는 불경죄까지 범했다. 외우는 기도문이라야 고작 네댓 개 밖에 없으면서도 암송할 때마다 얽히고설킨다. 성경과 묵주는 그저 장식용에 가깝다.

세례를 받으며 다졌던 각오들도 벌써 빛이 바랬다. 게으름을 떨쳐 내겠다며 시작한 아침운동은 20여 일만에 중단했다. 핑곗거리야 널렸다. 발목부상, 장마, 코로나 펜더믹에서 태풍까지. 한 푼이라도 아끼자며 동네공원에서 운동하자던 당초 계획에도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다 구차한 변명이다. 큰돈 내고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했던들 그 이상을 했을까.

거짓말도 여전하다.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남 탓, 환경 탓부터 한다. 당장 아침운동 못하게 된 것도 제 잘못이 아니라지 않는가. 남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이려 한다. 물론 아무도 속지는 않는다. 내 꼴만 우스워진다. 참 무모하고도 고약한 버릇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물론 전보다 횟수나 악의가 줄긴 했다. 그래도 한참 멀었다.

그랬다. 거짓말이 줄긴 줄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자가단속을 한 결과다. 세례성사 이후엔 더 많이 신경 썼다. 그러고 보니 '화'도 그랬다. 전에는 별 것 아닌 일에도 벌컥 벌컥 화를 내곤 했다. 화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영락없는 광인이 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건 전형적인 '분노조절장애' 증세였다. 그러던 게 눈에 띄게 줄었다.

화가 주니 욕도 줄었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수시로 내뱉던 욕이었다. 특히 자동차 안이나 아침 샤워실처럼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욕을 해 댔다. 막장 모노드라마였다. 물론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건 참 못난 짓이었다. 지금은 잘 하지 않는다. 분노나 욕설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 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부지불식간 튀어나오곤 한다.   
 
의연하고 담대하게 나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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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아직 초심의 열정이 온기를 발하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 그런 건 시간이 가면 금방 사그라들게 될 것이다. 내가 언제 그랬냐 할 때가 분명 올 거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진 거다. 게으름과 거짓말과 분노의 악마에게 무릎을 꿇은 거다. 아침운동은 가장 상징적인 나와의 약속이었다. 나는 그것부터 지키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아침운동을 시작하면서 적어도 40일만이라도 꾸준히 해보자 다짐했었다. 성경 안에서 40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노아의 시대엔 40일간 큰비가 내렸다. 모세는 40일 간 시나이 산에서 단식, 기도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40일 간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과 싸우셨고, 죽은 후 부활하시어 40일간 지상에 머물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숫자 40은 완전, 완벽 등을 의미한다.

어느 신부님께선 자신의 블로그에 뭐든 40일만 꾸준히 하면 습관이 된다고도 하셨다. 그 40일만 넘어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난 가까스로 절반을 넘기고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만큼 내면의 악마는 강하다. 우주 최강 능력자도 내면의 악마를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 한다고 했다(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중). 하지만 악마가 세기보다는 내가 너무 약하고 어리석었다.

예수님께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버리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날 지배해 왔던 욕망, 집착, 미련 따위를 버리라는 뜻이다. 그건 이를테면 복서의 군살이다. 전투력을 갉아먹는다. 패배의 단초다. 나는 링에 오르면서도 그것들을 어쩌지 못한 거다. 결과는 시작할 때 이미 정해졌다.

처음 실패를 인정했을 때, 사람 쉬 변하지 않는다는 뿌리 깊은 믿음은 과연 옳구나 싶었다. 사소한 삶의 습관이 그러니 본성까지 뜯어 고치는 것은 더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지난 두 달 간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영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변하고자 하면 변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의 여지가 보이는 듯도 했다.

우선 아침운동을 하자던 나와의 약속은 그래도 '20여 일 동안이나' 지켰다. 20일 넘게 매일 2시간 이상, 2만보 이상 걸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 정도면 많이 한 거다. 거짓말도 분노도, 욕설까지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과 행위를 저지르고 나면 꼭 자책하고 반성했다. 하늘을 보며 용서를 빌었다. 혹 그게 변화의 조짐은 아닐까. 가능성의 신호는 아닐까.

그냥 다시 시도하면 될 일이다. 또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될 일이다. 설령 죽는 날까지 그것이 무한반복 될지라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게 그저 시지포스 형벌처럼 무의미한 반복이지만은 않을 터다. 그러는 사이 정신의 키가 자라고, 마음의 근육은 단단해질 것이다. 단, 현명해져야 한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귀한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다. 무엇을 가지려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 뭘 빨리 이루겠다는 조급증은 나를 병들게 할 뿐이다. 지난 2개월, 나는 주님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난 걸 한시라도 빨리 증명하고 싶었다. 조급했고 욕심이 너무 컸다. 전략도 없었다. 그걸 거울삼아 다시 40일을 시작하려 한다. 이젠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침착하고 의연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

코로나19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혀 예기치 않았지만 사태는 장기화 되고 있다. 녀석은 지금도 쉬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방심한 빈틈을 노려 역습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서워하거나 놀랄 필요는 없다. 담대해져야 한다.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여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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