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일제 우뭇가사리 수집 혈안 해녀들 헐값에 수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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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릴레이 인터뷰보다는 추자도와 제주도 해역에서 발생한 역사적 근거 자료를 통해 사수도 해역 2차 분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곳에 인터뷰 요청을 하였으나 연말연시 바쁜 일정 때문인지, 고민이 더 필요한 것인지 인터뷰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넉넉하니 그만큼 고민 좀 해 보시라고 여유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자체의 공적 업무를 담당하시는 누구라도 사수도 분쟁 관련 인터뷰는 열외가 없습니다. 범군민, 범도민 차원의 확산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서라도 본보의 인터뷰는 사수도 2차 해역 분쟁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진행할 것입니다.
오늘은 사수도 해역에서 일본은 왜 우리의 해녀들이 필요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제주도 조천읍의 해녀 항쟁이나 추자도의 어업조합 분쟁은 역사의 큰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 해녀의 역사는 제주도에 있습니다. 해녀가 주로 하는 일은 물질하면서 소라나 전복뿐만 아니라 미역 같은 해초를 따내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기록으로 보면 전복을 임금님께 진상하면서 지방 관료들의 수탈 또한 받았습니다. 잠녀라고 부르던 해녀들의 삶은 피폐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은 우리 해녀들에게 또 무거운 짐을 지게 합니다. 천초라고 부르는 우뭇가사리와 감태를 채취하도록 한 것이죠.
우뭇가사리라고 부르는 천초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양갱을 만드는 주원료로 사용됐습니다.
양갱의 역사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가 있지만, 일본에서 밀가루와 팥을 쪄낸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가면서 일본에 다도 문화가 확산했고 무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 국민 간식인 양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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