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고터에서 여의도로...탄핵 집회에서 데이트한 커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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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산 응원봉은 빅뱅 공식 야광봉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팬클럽에 가입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상식이나 음악방송에 앉아 노란 빛의 왕관 모양 봉을 흔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본래 K-POP 팬클럽 문화는 정치 못지 않게 예민한 것이었다. 팬덤끼리 응원봉 색깔이 겹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합동 콘서트가 있는 날에는 시합이라도 붙은 듯이 각자 나눠진 구역에서 최선을 다해 봉을 흔들며 자기 가수를 응원했다.
혹여나 자리를 잘못 앉아 수많은 노란색 빛깔 사이에 다른 색깔 응원봉이 섞이기라도 하면 그 모습이 꽤나 이질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국회의사당 역 앞, 엄숙해 보이던 국회 건물 앞에 형형색색 응원봉이 규칙 없이 마구 섞여 흔들리고 있는 것은 MZ세대인 내게도 생소한 광경이었다.
국회와 응원봉의 조화
12월 7일, 원래라면 난 남자친구와 고속터미널에서 트리 장식을 사고 있었을 터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 우리는 계획을 바꿔 국회의사당 역으로 향했다. 이른바 '탄핵 데이트'랄까. 사실 탄핵이나 집회 뒤에 '데이트'를 붙이는 것이 맞나 싶다. 살다살다 별 추억을 다 쌓는다 싶다.
하지만 커플이라고 매일 맛있는 밥만 먹고 산책을 다니는 것만이 데이트겠는가. 우리는 어떤 언론의 가공도 거치지 않은 현장을 그대로 눈에 담았다. 이 가운데서 끊임없이 서로 질문과 답변을 나누는 것, 그것만큼 영양가 있는 데이트가 어디 있을까.
이날도 목적은 집회 참여였지만 마음이 그리 비장하지는 않았다. 나의 경우 그저 2016년 촛불집회 때 먹었던 붕어빵이 생각나서, 남자친구는 처음 집회에 참여였지만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다.
역시나 TV에서 보던 다양한 빛깔의 응원봉이 온 길거리를 도배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그들은 한 손에는 응원봉을 들고 있었지만, 동시에 한 손에는 각자의 일상을 여전히 살고 있었다.
누군가는 길 한 가운데 앉아 노트북으로 문서를 쓰기도 하고, 한쪽 귀를 막고 거래처 전화를 받기도 하고, 우리처럼 길거리에서 어묵과 호두과자를 먹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이날 특히 민주노총 깃발을 들고 추워서 코를 닦으며 뛰어가는 아저씨들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언론에서 늘 과격하게 다뤄지는 탓에,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으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동네 이웃 주민 같은 모습에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윤석열은 기어코 언론에서 비추던 과격한 집단의 뒷면에 얼마나 잔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많은지 청년들의 눈으로 직접 보게 했다.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가짓수의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논문 쓰다가 뛰쳐나온 사람들',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붕어빵 꼬리부터 먹기 운동 본부' 등 조직화된 단체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낸다. 어떤 사소한 이유라도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을 한 마디로 규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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